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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한국 축구의 유럽 개척자(분데스리가, 업적, 유럽무대)

by 오늘이 제일 아름다운 그대 2025. 2. 26.

레버쿠젠 축구팀

 

차범근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단순히 실력이 뛰어난 축구 선수로 평가받는 것을 넘어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기여한 인물로도 기억된다.

특히, 차범근이 1970~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하며 유럽 무대에서 성공한 첫 한국 선수라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당시 유럽 축구계에서 아시아 선수들은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차범근은 이러한 편견을 깨고, 한국 선수도 유럽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빠른 스피드, 강력한 슈팅 능력, 그리고 피지컬을 앞세워 독일 무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특히, 분데스리가 명문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주축 공격수로 활약하며 UEFA컵(현 유로파리그) 우승을 두 차례나 차지했다. 이는 당시 아시아 선수로서는 유례없는 업적이었다.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남긴 기록과 그가 한국 축구에 미친 영향을 자세히 살펴보자.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도전과 성공

차범근은 1978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다름슈타트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 선수로서 유럽 진출 자체가 드문 일이었고, 낯선 환경과 새로운 축구 스타일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차범근은 특유의 근성과 성실함으로 이를 극복했다.

이후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한 그는 본격적으로 유럽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내에서도 강팀으로 평가받았으며, 차범근은 이 팀에서 빠른 발을 활용한 돌파와 날카로운 슈팅으로 많은 골을 기록했다.

특히 1980년, 프랑크푸르트가 UEFA컵 우승을 차지하는 데 차범근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당시 유럽 무대에서 아시아 선수가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으며, 이는 차범근을 독일 축구계에서도 주목받는 선수로 만들었다.

그의 성공은 레버쿠젠에서도 이어졌다. 1983년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차범근은 여전히 팀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하며 1988년 다시 한번 UEFA컵 우승을 경험했다. 그의 뛰어난 활약은 독일 팬들 사이에서도 인상 깊게 남아 있으며, 지금도 분데스리가 역사에서 기억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일 팬들은 아직도 차 붐(차범근의 애칭)을 기억하고 있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 총 308경기에 출전해 98골을 기록했으며, 이는 당시 아시아 출신 선수로서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특히, 그의 주력과 몸싸움 능력은 독일 무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으며, 이는 이후 한국 선수들이 유럽에서 활약하는 데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

차범근이 한국 축구에 남긴 업적

차범근의 성공은 단순한 개인적인 업적을 넘어 한국 축구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한국 선수도 유럽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이는 이후 한국 축구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도전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특히, 그의 활약을 본 유럽 클럽들은 한국 선수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으며, 이후 박지성, 손흥민, 황희찬, 김민재, 설영우, 배준호, 양현준 등 여러 선수들이 유럽으로 진출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차범근은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하여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유럽식 전술과 훈련 방식을 한국 축구에 도입하려 했다. 비록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의 지도 철학은 이후 한국 축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차범근 축구교실을 운영하며 유소년 축구 발전에도 힘썼다. 그의 축구 철학은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강한 정신력과 투지를 가질 수 있도록 강조하는 데 있었다. 이는 한국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차범근이 미리 닦아 놓은 유럽 무대 

차범근의 활약 이후, 분데스리가는 한국 선수들에게 가장 친숙한 유럽 무대 중 하나가 되었다. 그의 성공을 바탕으로 차두리, 구자철, 손흥민, 황희찬, 이재성 등 여러 한국 선수들이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히 손흥민은 차범근 이후 가장 성공적인 분데스리가 출신 한국 선수로 평가받는다. 그는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에서 활약한 후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손흥민 역시 차범근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으며, 그의 성공에는 차범근이 개척한 길이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차범근이 독일 축구계에서 남긴 긍정적인 이미지 덕분에 한국 선수들이 독일 무대에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한국 축구가 유럽 무대에서 꾸준히 성장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결론: 차범근, 한국 축구의 살아 있는 전설

차범근은 단순한 축구 선수가 아니라, 한국 축구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분데스리가에서 아시아 선수의 가능성을 증명했으며, 이후 한국 선수들이 유럽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많은 독일 사람들이 아직도 차붐을 기억하고 있다.

그의 성공은 한국 축구가 국제적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으며, 지금도 많은 축구 팬들은 그의 활약을 기억하고 있다. 차범근은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그리고 축구 행정가로서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롭게 쓴 인물이며, 앞으로도 그의 유산은 한국 축구계에서 계속해서 회자될 것이다.